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 Brandenburg-Preußen )은 역사적으로 초기 근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호엔촐레른가가 세운 왕국으로 1618년부터 1701년까지 존재했다. 브란덴부르크 공국에 기초한 이 국가는 호엔촐른 가문이 프로이센 공국을 지배하는 가문과 결혼하고, 이후 1618년 부계의 계승이 끊기게 되었다. 클레브, 마크, 라벤스베르크 등의 라인 강에 위치한 공국들을 1614년 통합한 것도 공국의 성장 배경이었다. 30년 전쟁 당시 국토 전체가 폐허가 되었는데, 이는 개신교 군대와 가톨릭 군대가 영토를 휩쓸고 다니면서 살해, 약탈, 방화, 강간 등이 끊이지 않았고 지도자가 3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인구의 절반이 죽거나 난민이 되었고, 베를린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폐허가 되면서 회복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30년 전쟁 이후 브란덴부르크는 민덴, 할베르슈타트, 포메라니아, 마그데부르크 등을 점령했다. 제2차 북방 전쟁이 브롬베르크 조약으로 끝난 이후 프로이센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복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라우엔부르크뷔토 지방을 획득했다. 1679년 브란덴부르크는 영토를 포메라니아 전체로 확장시켰다.
17세기의 후반은 프로이센이 유럽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1653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군이 프로이센 군의 도입에 기초하여 창설될 움직임이 보였고, 바르샤바 전투와 페르벨린 전투, 스웨덴 군 추격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은 해군도 창설하여 카리브 해와 아프리카 서해안에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기여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 대규모 개신교 난민을 수용함으로써 주목받았고, 브란덴부르크의 행정체계를 중앙화하고 봉건제후들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프로이센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1701년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으로 그의 직위를 높였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 외부에 있던 프로이센 공국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스페인 왕위계승전쟁과 대북방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다른 유럽 왕실과 동맹을 맺으면서 그 직위를 인정받았다. 1701년부터 호엔촐른 가문의 영역은 프로이센 왕국 또는 프로이센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의 동군연합은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제국에 대한 황제의 지배는 실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1701년 이후 브란덴부르크는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프리드리히와 그의 계승자들은 중앙집권화를 이어나가 영토 확장에 주력했고,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시대의 동군연합적 성격을 지닌 정치체계를 베를린을 중심으로 하는 주 체계로 바꾸었다.